버린다고 하면서도
아내와 다투었다.
시작은 사소하다.
혼자 점심을 먹는데 쌈장이 딱딱해서 잘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유효기간(소비 기간 이전의 제품임)을 보니 한참 지났다. 그래도 먹어도 되겠지. 어제도 그제도 이걸 먹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런 걸 먹어야 할 만큼 어려운 삶을 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버렸다. 그리고 토마토 케찹을 꺼냈다. 1/3쯤 남은 것이었는데 먹으려다 하도 오랜만에 꺼낸 것이라 유효기간을 보니 한참 지났다. 그래서 그것도 버렸다. 그리고 예전에 얼려 두었던 묵가루를 꺼내 볼까 하는 생각에 냉동실을 여니 얼린 밥이 2인분 정도가 있었다. ‘이것도 오래된 거 아니가?’ 하는 생각에 버렸다.
이것 때문에 저녁에 터졌다. 버렸다고.
아내 왈
“냉장고 이쪽은 손대지 말랬잖아.”
쌈장도 케찹도 얼린 밥도 금지구역이다.
거실 화장실, 냉장고 반쪽, 세탁기 등은 내 금지 구역이다.
가지 끝은 사소한 일이지만 뿌리는 큰 문제가 있는 법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 욕망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
살아온 삶만 해도 분에 넘친다고 말은 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욕망이 넘쳤다. 그래서 먹고 움직이고 하면서 ‘유기농, 채소, 운동’ 하면서 살아왔다.
말로는 앞으로의 삶은 ‘덤’이라고 초연한 척하면서 생존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찬 거짓된 삶을 살았다.
내 속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버리고 싶다. 앞날의 구질구질한 욕망을.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축복 아닌가?
내 누나 하나, 아우 둘도 일찍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나. 그런데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잘 살았으면서, 나의 유전자가 세상에 건강하게 남아있음에도 더 오래 건강하게 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겉으로는 초연한 척.
‘오늘 먹는 음식이 내일의 내 몸이다.’
‘오늘 하는 운동이 내일 내 몸이다.’
하면서 맛있는 음식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탐했고 몸을 괴롭혔다.
이제 다시 삶을 설계한다.
그냥 맛나게 먹고 살자.
그냥 유쾌하게 움직이며 살자.
이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버리지도 말고 무얼 사서 냉장고에 넣지도 말자. 냉장고 주인이 채워 놓은 거 꺼내 먹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냥 보통사람들처럼 움직이자.
뒹굴거리면서 넉넉하게 살자. 꿈자리 사납게 강박관념에 지배당하지 말고.
이제 꿈꾸는 나머지 인생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없이 살다 가는 거.
비루한 꼴을 보이지 않고 살다 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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