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추억

세 물결 2024. 4. 3. 21:25

밭으로 가신다

무엇이라도

들고 오신다

 

잇몸만 남은 입술에

미소가 감도는데

만족함인지 쑥스러움인지

 

제발

일 그만 하시라고 아들은

역정을 내는데

틈만 나면 밭으로 달아나신다

 

노인네 일하시는 거

애잔하다 애잔하다

모두들 말을 거든다

놀아주진 않으면서

건성 인사로 지나치면서

 

대청마루에서

대문 밖 길을 지키신다

하루 종일

지나가는 이들을 머리에

가슴에

기록하신다

 

저녁이 되면

기록을 펼쳐 놓으신다

해설도 풀어 놓으신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주도

읽을 겨를도 마음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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